아무도 우리를 구해주지 않는다

🔖 나이가 들수록 (그리고 바라건대 현명해질수록) 나는 잠시 멈춰 서고 싶어진다. 무얼 느끼는지, 왜 그렇게 느끼는지 찬찬히 생각할 시간을 갖고 싶다. 남들이 소비할 수 있는 즉각적인 반응을 보이며 내가 전혀 모르는 문제에 관해 전문가 행세를 하고 싶진 않다. 활용 가능한 수단, 주로는 SNS에서 만인의 반응을 요구하는 행위 가 증가하는 까닭은 그만큼 우리가 일상에서 무력감을 느끼기 쉽기 때문이다.

🔖 그러나 나는 희망 말고 가능성에 대해 계속 생각하고 싶다. 희망을 품을 때는 어떤 일이 일어날지를 두고 주도권을 가질 수 없다. 그때 는 우리가 가진 모든 믿음과 에너지를 변덕스러운 운명에 쏟아붓게 된다. 책임을 회피하게 된다. 스스로 현실에 안주하게 된다. 우리는 최선을 다해 자기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 아닌가? 무력감을 느끼기는 쉽다.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다고 상상함으로써 스스로를 불편 하게 하는 편이 훨씬 더 어렵다. 그러나 우리는 할 수 있다. 아주 작은 행동이라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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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어떡하지?" 이 질문은 우리가 어디에 있든 중요하다. 나는 졸업생들에게 "행운을 빈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행운은 희망과도 같다. 통제할 수 없고 지극히 덧없다는 점에서 그렇다. 우리가 진정 서로에게 빌어줘야 할 것은 희망을 넘어선 실천을 통해 비로소 가능해질 모든 것의 힘이다.

🔖 모리슨의 작품을 처음 읽었을 때, 나는 그의 작품이 흑인 여성의 몸으로 살아간다는 의미를 비춰내면서도 그것을 훌쩍 넘어선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나는 장대한 위엄과 무한한 가능성을 보았다. 위험을 무릅쓰더라도 안이한 선택은 하지 않고, 용감하고도 담대하며, 자신의 기술을 능란하게 구사하는 작가를 보았다. 뉴요커에 실릴 작가 소개를 위해 힐튼 앨스와 나눈 대화에서 모리슨은 이렇게 말했다. "흑인 여성 작가라는 건 글을 쓰기에 결코 얕지 않은, 풍요로운 공간입니다. 그러니 기꺼이 그 수식어를 받아들입니다. 흑인 여성이라는 수식어는 내 상상력을 제한하는 게 아니라 확장해줍니다. 백인 남성 작가인 것보다 풍요롭지요. 내가 더 많이 알고 더 많이 경험했으니까요."
모리슨은 나를 비롯해 모든 세대의 흑인 작가들에게 우리가 풍요로운 위치에서 글을 쓴다는 사실을 일깨워주었다. 우리가 타인들에게 중요한 존재가 되려면 먼저 우리 자신에게 중요한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몸소 보여주었다. 창작인 동시에 필수적인 정치적 행위인 글쓰기에서는 부끄러울 게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드러내주었다.

🔖 당신이 편지에 쓴 건 무심함이 아니에요. 당신은 지금의 세상이 처한 상태에 무관심하지 않습니다. 당신은 자신의 욕구들과 세상에 좋은 일을 하는 것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려 노력하는 인간적인, 한 명의 여성일 뿐이에요. 지금 당장은 당신의 욕구 쪽이 더 우세한 상황인 거죠. 충분히 시간을 가지세요. 감정 저장고가 차올랐을 때 다시금 공감을 확장하겠다는 다짐을 잊지 않는 한, 이 상태에 수치심을 느낄 이유는 하나도 없습니다.